내 주변 알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난 영화 타짜를 정말 많이 봤다. 대학생 시절에는 거의 1일 1 시청을 했었다.
나중에는 영화를 보면서 모든 대사를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원작 만화책을 보고 각색에 감탄하고, 또 여러 번 봤다.
왜 콘텐츠를 여러 번 볼까? 보통 처음 콘텐츠를 볼 때는 내용이 궁금해서 보기 마련이다. 2번째 볼 때는 분명 내용은 안다.
결국 내용이 궁금해서 보는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 어렸을 때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봤던 이유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
내 경우, 영화의 스토리를 알고나면 스토리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스토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다.
그래서 스토리 외의 것을 더 볼 수 있다. 배우의 표정일 수도 있고, 왜 감독은 이렇게 찍었을까 고민해 볼 수도 있고, 옥에 티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타짜는 각 캐릭터가 너무너무 매력적이라, 캐릭터의 감정선을 정말 많이 봤던 것 같다. 정마담, 고광렬, 고니, 너구리, 화란, 세란 등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해서 보면, 정말 악역이 없다. 모든 캐릭터의 서사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된다. 어쩌면 이렇게 캐릭터가 이해되는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타짜는 거짓말없이 300번은.. 더 본 것 같은데, 캐릭터 하나만 얘기해 보자. 평경장은 왜 고니를 받아줬을까?
평경장의 대사에서 굳이 찾아보자면, “탈이 좋아서”이다. 평경장은 노름을 하지만, 재미를 위해 노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고니를 만나기 전의 생활만 봐도 집에서 나무를 가꾸거나, 작은 노름판에서 돈을 빌려주는 일 정도만 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노름꾼이라기보다는 노름을 했다가 돈을 꽤 벌고 은퇴한 사람의 느낌에 가깝다.
실제로 평경장이 선수로 뛰는 장면은, 고니를 공부시킬 목적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 것을 미루어 보아 평경장은 고니를 받아들인 것이 무료한 일상 속의 취미였을 것 같다. 고니가 등장하고 나서는 노름판에 앉아있는 것도 지루해하며, 고니의 안부를 물었으니.
평경장은 정마담을 만나러 가는 시점에 이미 고니가 떠날 것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언제가 됐든. 그래서 평경장은 본인의 마지막 원칙대로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는 것처럼, 고니를 보낸다.
그런 모습을 보면, 원작 만화에는 평경장을 소개시켜주는 철물점 이씨가 있는데, 각새 과정에서 평경장과 이 철물점 이씨 캐릭터를 섞은 것 같다. 실제로 이씨의 대사를 채용한 부분도 있고.
영화를 이렇게 깊게 들여다보면 어딘가 저 먼 세상에서 실제로 각 캐릭터들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얘기가 길었는데, 이렇게 콘텐츠를 여러번 보면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여러번 봤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일단 여러 번 볼 시간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번 보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콘텐츠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본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더 글로리의 후련함(?)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후반 3편 정도를 다시 봤다.
앞부분의 감정선은 전부 알고 기억하고 있으니, 처음 봤을 때의 느낌 또한 다시 온다.
슬의생에서 준완이가 고백하는 장면이 보고 싶어서 그 장면 앞뒤 몇개의 에피소드를 본다던지.
같은 이유로, 타짜도 이제는 전체를 다시 보지 않고, 고니가 평경장의 사망소식을 듣고 정마담에게 아귀를 찾아오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라던지, 특정 감정이 생각나서 다시 본다.
콘텐츠를 다시 보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아내도 같은 콘텐츠를 자주 보는 사람인데 타짜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젓는다.
지금도 이렇게 과거 콘텐츠를 뜯어먹으며 사는데, 미래를 위해서 지금 나오는 콘텐츠도 열심히 봐야겠다.
다행히 아직까진 재밌게 보고 있다.
지금은 엄마의 추천으로 킹더랜드를 보고 있는데 쉽지 않지만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