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제안으로 쓰게 되는 글인데, 정말 가감 없이 써보려고 한다.
사업과 관련된 커리어라고 하면, 첫 사업인 슬기로운생각을 운영하다 약 1년 반 만에 정리했고 사다리필름에서 일했다. 사다리필름에서는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달라서 나오게 되었다.
이후, 무슨 생각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을까.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
강의를 해야 해서
이때 이미 난 한양대학교와 안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학교 강의는 기업 강의에 비해 수입이 매우 적다. 하지만 모교에서 애정을 갖고 가르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당연히 회사에 다니면서 강의를 하기는 어렵다. 재직자 대상으로 저녁에 하는 강의는 가끔 있지만, 겸임교수로서 학교에서 강의를 하려면 사실상 직장인은 할 수 없다.
강의를 지속하면서 사업하는 것보다 매력적인 직장이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의 아쉬움과 창피함
슬기로운 생각에서는 통신 대리점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했었다. 제품을 만들고 사전 영업도 했었으나, 통신사와 협의를 못 마치고 결국 폐기처분당했다. 약 6개월간 밤낮없이 만들었던 솔루션이 폐기처분당하면서 마음이 많이 꺾이기도 했고, 통신 분야의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폐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사다리필름에 이사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도메인을 만나고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했었다. 영상 제작 분야 또는 마케팅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 솔루션 등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했었다. 그 당시 기대했던 것 보다 회사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기획하기에는 내가 도메인을 너무 모르기도 했고, 수많은 영상 제작 관련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개발자로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슬기로운생각, 사다리필름 시절까지 합치면 거의 6년 동안 사업을 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내가 사업하는 것을 안다.
언제나 외주 개발보다 서비스, 플랫폼, 솔루션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주변에 많이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 친구나 동료 개발자들을 만나면 질문을 받았었다.
“오 슬생은 요즘 뭐 만들어?”, “만든 건 좀 팔렸어?”
“영상회사에서 뭘 하는 거야?”, “만든다는 건 잘 돼 가?”
질문받을 때 당당하게 이런 걸 만들었고, 요즘 좀 팔렸다던가, 잘 돼 간다는 얘기를 해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준비 중이라고 대답하거나 두리뭉술 얘기했었다. 그러면서 꼬리표처럼 따라 얘기했던 것이, 외주다.
“준비는 거의 다 되었고 이제 사람들 만나고 있어! 그리고 뭐.. 외주하느라 바쁘지.”
회사가 우여곡절은 있지만, 그래도 잘 굴러가고 있고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번의 회사 이후 직장인이 되면 너무 자격지심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서비스, 플랫폼, 솔루션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니, 외주만 하고 망했네.”
노동의 한계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과거 사업하던 시절에는 월급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강의도 하고 개인 프리랜서로 외주를 많이 했었다. 강의와 개발 프리랜서 모두 노동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노동한 시간 대비 괜찮은 수입이었다. 하지만 소비하는 에너지가 정말 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동 대비 괜찮은 수입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의를 한참 하다 보면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진짜 지속할 수 있을까?”
개인 프리랜서로 일하던 때에도, 외주 업체에서 수시로 연락이 오기 때문에 휴가 중에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가도 연락이 오면 내려서 벤치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든 생각이, 노동의 한계이다. 나는 늙어갈 것이고, 내 노동의 효율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노동과 별개로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비슷한 생각으로,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투자를 하는 것 같다. 나는 LAH에 투자하고 있다.
사업을 지속하는 이유
대부분 일은 어떠한 이유로 시작하게 되지만, 실제로 시작하고 나면 너무 달라서 지속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오죽하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본업으로 삼지 말라”는 농담도 있다. 뭐 물론 케바케지만.
앞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지만,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이제는 강의보다 회사에 시간을 더 쓰고 싶은 상황이고, 서비스도 앞서 느꼈던 창피함을 이겨낼 정도로 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성장, 책임, 가능성이다.
우리 회사는 구성원 간의 대화가 정말 없지만, L, A, H는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눈다.
수많은 인풋을 공유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어떤 일이라도 있으면 그 일에 대해서 온전히 고민하고 생각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 다양한 면에서 나은 사람이 되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스로 이런 부분을 자각할 때의 기분은 정말 좋다.
기술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어느 회사건, 대표는 가장 책임이 크다. LAH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에 직원에 대한 책임은 너무 당연하지만, 사실 대표들에 대한 책임이 제일 크다.
대표가 셋이라는 것은 회사에 해야 할 일이 100%라고 했을 때 33.333%씩 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 분야로 뻗어서 결국 300%의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즉, 굉장히 상호 보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만약 혼자 대표이고 100%를 했다면 내가 한 100%만 온전히 책임지면 된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셋이 300%의 일을 하면 각각 맡은 부분은 100%라고 할 수 있지만, 책임감은 셋 다 온전히 300%로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한 명이 사라지면 결국 0이 되기 때문이다. 삼각대처럼.
마지막으로 가능성인데, 스스로가 속한 조직을 가능성 있다고 판단하는 것만큼 주관적인 것이 없겠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가능성은 훗날 결과로 평가가 되겠지.
몇 년 뒤쯤엔
“이렇게 살려고 사업했어.”
라고 말하고 싶다.